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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의 옷 잘 입는 공식] 멋쟁이는 여름에도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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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2연락처 작성일25-08-31 14:46 관리자답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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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밝고 가벼운 색의 계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이들은 여름에도 블랙을 입는다. 도심을 걷다 보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검정 옷을 입은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블랙을 입는다는 것은 결국 스타일링에 대한 철학의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는 이들이 선택하는 컬러는 단연 블랙이다. 블랙은 더운 계절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해야 할 색이 아니라 나만의 감각을 섬세하게 표현해주는 색이다.
땀을 걱정하기보다 실루엣을 생각하는 사람, 덥다는 말보다는 멋을 말하는 사람. 여름에도 블랙을 입는 사람은 계절보다 자신의 스타일에 더 집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블랙이 ‘시크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블랙이 가볍고 시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답은 ‘소재’에 있다.
리넨(마직물)은 피부에 달라붙지 않아 바람이 통하는 듯한 시원함이 있다. 구겨져도 그 주름이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블랙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셔츠, 드레스, 팬츠, 스커트 등 여름철 모든 아이템에 두루 활용할 수 있다.
보일(얇은 거즈직물)은 가볍고 부드러우며 은근한 비침이 있다. 한 겹만 입어도 시원하고, 블랙에 산뜻함을 더해줄 수 있다. 셔츠나 블라우스, 볼륨감 있는 스커트에 특히 잘 어울린다.
크레이프(주름직물)는 표면의 미세한 요철로 깊이감과 적절한 무게감을 지닌다. 구김이 적고,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흐른다. 톱이나 블라우스, 원피스처럼 드레이프(자연스럽게 늘어지는 주름과 곡선)가 중요한 아이템에 적합하다.
저지(면으로 만든 운동복 소재)는 신축성이 좋아 활동하기에 편하다. 얇게 짜인 여름용은 가볍고 시원하며, 티셔츠와 드레스 모두에 잘 어울린다. 볼륨이 넓은 드레스나 간결한 일자형 드레스도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다.
비스코스(인견)는 매끄럽고 차가운 촉감이 특징이다. 늘어뜨렸을 때 자연스러운 주름이 잡히는 드레이프성이 뛰어나 블랙 컬러의 실루엣이 유려하게 떨어진다. 톱, 팬츠, 원피스 등 다양한 실루엣을 소화할 수 있는 여름철 전천후 소재다.
코튼 포플린(평직 면직물)은 빽빽한 평직으로 짜여 표면이 매끄럽다. 청량한 촉감과 단정한 형태감을 유지하며, 셔츠, 원피스, 팬츠, 아우터까지 사실상 모든 아이템 제작에 활용 가능한 범용성 높은 소재다.
여름철 블랙 소재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와 데일리 브랜드의 사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브랜드 ‘더 로우’는 블랙 실크 크레이프 소재로 절제된 롱드레스를 선보인다. 크레이프는 깊이감을 더하고, 드레이프성이 뛰어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흐른다. 덕분에 롱드레스의 실루엣이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럽게 떨어진다.
‘토템’은 민소매 비스코스 니트 상의에 얇게 비치는 보일 스커트를 매치해 우아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스타일을 제시한다. 비스코스는 매끄럽고 시원한 촉감으로 블랙의 선명함을 살리고, 니트에도 부드러운 흐름을 더한다. 보일 소재 스커트는 가벼운 비침과 공기감으로 산뜻한 볼륨을 연출한다.
‘로에베’는 고급스러운 실크 골지 니트와 코튼 배럴 레그 팬츠로 여유로운 캐주얼룩을 완성한다. 실크 니트는 부드러운 광택과 매끄러운 촉감으로 상체 라인을 정제되게 감싸고, 코튼 배럴 레그 팬츠 특유의 허벅지 볼륨과 발목 쪽으로 좁아지는 곡선 덕분에, 캐주얼하면서도 세련된 블랙 팬츠 스타일이 갖춰진다.
‘자라’는 리넨, 보일, 크레이프, 코튼 포플린 등 여름 블랙에 어울리는 소재를 거의 모두 갖추고 있다. 셔츠, 드레스, 팬츠, 스커트까지 실루엣의 폭도 넓어, 한 시즌 안에서도 다양한 결의 블랙 룩을 경험할 수 있다.
‘유니클로’는 최근 코튼 배럴 팬츠로 공전의 ‘히트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허벅지에 볼륨을 주고 발목으로 좁아지는 곡선형 실루엣 덕분에, 블랙 팬츠임에도 답답하지 않고 경쾌하다. 여기에 저지 티셔츠, 리넨 셔츠 같은 여름 블랙의 기본 아이템을 더하면 유행과 실용성을 모두 잡을 수 있다.
‘무신사’는 스트리트 감각이 가미된 여름 블랙 아이템이 강점이다. 보일 소재 스커트나 크레이프 원피스처럼, 소재 특유의 질감을 트렌디한 실루엣에 입혀 새로운 여름 블랙을 제안한다.
블랙을 잘 입는 방법은 상·하의 소재를 다르게 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답답해 보이지 않고, 같은 블랙 컬러라도 두께감의 차이로 한층 가벼운 인상을 줄 수 있다. 상의가 민소매라면 하의는 길게, 상의가 긴소매라면 하의는 짧게 입는 것만으로도 경쾌해 보인다. 이 공식은 도심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리조트에서도 풍성한 블랙 드레스를, 혹은 짧은 팬츠에 블랙 리넨 셔츠를 입어보자. 누구보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편안해 보일 것이다.
여름의 끝에서, 올 블랙이야말로 시크함을 가장 손쉽고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선택이 되어줄 것이다.
전북 무주의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이하 드림마을)에는 공개된 와이파이가 없다. ‘숨겨진 네트워크’로 들어가 직원들만 접근가능한 계정으로 접속해야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심용출 드림마을 기획운영부장은 “가끔 몰래 공기계를 갖고 오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드림마을이 와이파이 접근 문턱을 높인 이유는 이곳에 모인 청소년들을 위해서다. 드림마을은 스마트폰 과의존·인터넷 도박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 대상 치유캠프를 진행하는 곳이다. 1~4주 가량의 치유 캠프 기간 중 청소년들은 스마트폰과 단절된다.
지난 25일 폐교를 리모델링한 드림마을을 찾았다. 11박12일간 입소한 청소년 31명이 퇴소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날 오전 드림마을 곳곳에선 동아리 활동이 한창이었다. 특성화활동실에선 대학생 멘토와 청소년들이 함께 둘러앉아 악기 칼림바로 아이유의 ‘가을아침’을 연주했다. 옆 건물 체육관에선 투어스의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에 맞춰 멘토-청소년들이 함께 단체 줄넘기를 했다. 점심시간엔 멘토와 학생들이 모여 오목·체스를 두거나 책을 읽었다. 하진미 캠프운영부장은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도박 대신 다른 쪽으로 주의집중을 쏟게 하고 다양한 관심사를 알아가게 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드림마을 참가자는 성별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구분없이 다양하다. 해마다 400~500명이 이곳을 찾는데 남학생 60%, 여학생 40%의 비율이다. 여학생은 주로 SNS 과의존으로, 남학생은 게임 문제로 드림마을에 오게 된다고 한다. 중산층 가정의 자녀,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은 청소년이 함께 치유캠프에 참가한다.
부모가 자녀를 보내는 사례가 많지만 학교의 담임·상담교사들이 판단해 학생을 치유캠프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부모들은 단순히 스마트폰 이용 자제만이 아니라 기상, 세탁, 전화기·사워기 이용 시간을 정해놔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기르는 데에도 캠프 입소가 도움이 된다고 본다. 하 부장은 “입소 첫날 ‘나가고 싶다’고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며 충동과 자극에서 벗어난 뒤엔 ‘좀 더 있을 수 없냐’고 부탁하는 청소년들도 많다”고 했다. 이번 기수에서도 8명이 입소 첫날 울고 화내며 ‘집에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교실 곳곳에는 청소년들이 적은 활동지가 붙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나에게 인터넷이란’ ‘e스토리 곡선’에서 자신이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이유, 하루 스마트폰 이용 시간 등을 적었다. 대다수 학생들이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을 6~7시간이라고 썼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을 계속해서 사용했던 이유로는 “할 게 없어서” “불안을 없애려고” “친구들과 연락하려고” 등을 적어냈다. 캠프에 참가한 고1 김모군(16)은 “학교 끝나고 시간을 보낼 게 마땅히 할 게 없어 스마트폰에 기대기 시작했다”며 “종종 스마트폰을 하다 늦게 잠이 들어 일주일에 한 번은 학교에 지각을 했다”고 했다.
센터는 청소년들의 답변을 참고해 스마트폰에 과몰입하는 원인 찾기에 집중한다. 외부 박사급 상담인력을 통해 집단상담·개별상담을 진행한다. 심 부장은 “스마트폰 과의존은 하나의 표면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삶의 의지가 없는 친구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왜 삶의 의지가 없는지를 상담을 통해 파악한 뒤 접근하려 한다”고 했다. 대학생 멘토로 캠프에 8번째 참가한 신환씨는 “부모와 갈등을 회피하려는 학생, 관계 맺기에 서툴러 오픈채팅방과 SNS에서 지지 받으려는 학생처럼 저마다 다른 결핍과 불안이 보였다”고 했다.
최근 들어 드림마을은 캠프 입소 희망자의 저연령화에 주목하고 있다. 사업관리부의 이정아씨는 “올해 들어 초등학생 문의가 많아졌고 하루 2~3명씩 초등학생 상담을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드림마을은 스마트폰 과의존의 저연령화 추세에 맞춰 초등 4~6학년 대상 시범 캠프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엔 불법 인터넷 도박에 중독된 초등 6학년 학생의 캠프 입소 문의 전화가 오기도 했다. 이씨는 “페이스북 등을 통한 불법 인터넷 도박 광고와 친구의 권유가 도박 중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내 제과제빵 업계에서 양질의 책을 출판하기로 정평이 난 어느 출판사에서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셰프 중 32명을 모아 9월 중순 발간을 목표로 레시피북을 내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출판사는 꽤 오랫동안 디저트 관련 책만 만들다 우연한 기회로 나와 처음으로 요리책을 만들기도 한 곳이었는데, 이번 청탁도 그것이 연이 된 듯했다.
가게며 방송에서 주로 요리를 하고 있지만 디저트도 함께 만들고 있다 보니 이런 기획에 내 이름이 언급되며 연락이 오는 것에 슬쩍 뿌듯한 마음이 들었고, 평소 흠모하던 셰프들과 같은 책에 실린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아직도 소셜미디어의 피드를 꾸미는 것보다 손에 잡히는 책과 잡지에 레시피를 올리는 것이 더 재미있는 사람이라 한동안 밤마다 레시피를 고민하며 잠들었다.
하지만 그런 책에 마냥 내가 선보이고 싶은 디저트를 제안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획된 책 내용은 ‘내일을 위한 디저트’였다. 모두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는 것처럼 디저트 업계도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편집자의 설명이었다.
2000년을 전후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았던 ‘제로 웨이스트’ 콘셉트의 레시피가 떠올랐다. ‘제로 웨이스트’란 원래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사람들이 만들고 사용한 모든 물건을 재활용·재사용하며, 더 이상 쓸 일이 없다며 버리거나 방치하는 일 자체를 일상생활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종적으로 ‘쓰레기 무배출’의 철학을 가진 운동이다.
이런 움직임은 한때 음식업계에서도 꽤 큰 화두였다. 여러 유명 요리사가 방송이며 도서를 통해 냉장고에서 힘없이 말라가는 토마토를 오븐에 넣어 수제 건토마토를 만든다거나, 너무 익어 먹기 힘들 정도로 물컹거리는 멜론에 정원에서 딴 허브와 약간의 브랜디를 넣어 냉수프를 만드는 등의 조리법을 선보였다.
나도 이번 책에 그런 방향으로 당근 하나를 남김없이 사용하는 레시피를 담기로 했다. 당근을 갈아 과육과 즙을 분리하고, 과육은 반죽에 넣어 케이크를 굽고 즙은 초콜릿과 섞었다. 감자칼로 벗겨낸 껍질은 따로 모아 튀긴 뒤 설탕을 입혔다.
물론 이러한 접근의 조리법들이 생활 속에서 낭비되는 물건의 재사용과 재활용을 촉진하고, 쓰레기 무배출을 이뤄내는 데 대단히 의미 있는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이제 소비와 직결되고, 그것은 곧 쓰레기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장을 볼 땐 유통회사들이 비닐과 플라스틱과 코팅된 종이 포장에 이미 담아놓은 재료들을 사는 수밖에 없고, 식사를 마치고 남은 음식은 다회용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이제 개인의 의지로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다행히도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할 때만은 소소한 변화를 이룩해낼 수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주 약간의 고민만 한다면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는 것도 분명 가능할 것이다. 곳곳의 아주 작은 의지들로 서서히 변화하는 내일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끝난 지금, 우리는 한 가지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라는 지도자가 앞으로 국제질서에 끼칠 악영향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만큼 막대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그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트럼프라는 정치적 현상이 국제질서에 던지는 그림자는 단순한 정책 변화 차원이 아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쌓아 올린 글로벌 협력 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근원적 도전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는 ‘트럼프 비용’이라는 새로운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훗날 제국주의로 치달은 18세기 절대왕정의 중상주의를 연상시킨다. 관세에 대해 “나는 때리되 너는 때리지 마라”라는 일방적 룰은 상호주의라는 근대 국제경제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외국 기업들에 미국 투자를 강요하고, 핵심 산업의 지분까지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행태다. 이는 마치 15세기 명나라가 주변국들에 조공을 요구했던 방식과 닮아 있다. 현대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이런 신중상주의적 접근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아이러니다.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극단적이다. 관세폭탄, 보조금 삭감 요구, 경제적 단절 위협까지 동원하는 모습은 ‘대통령’이 아닌 ‘황제 트럼프’라는 별명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트럼프 현상의 가장 위험한 측면은 극우적 세계관과 음모론적 사고가 국제관계에까지 스며든다는 점이다. 브라질부터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그는 타국 정상들 앞에서도 거침없이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허위사실로 상대를 압박한다. 이 대통령과의 회담 3시간 전에 소셜미디어에 올린 ‘숙청과 혁명’ 메시지는 그의 정신적 불안정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논리와 증거보다는 감정과 추측에 의존하는 반지성주의가 세계 최강국의 외교정책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사회에 깊은 우려를 안긴다.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동맹은 더 이상 공동의 가치와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십이 아니다. 그것은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되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 미국산 무기 구매 압박, 일방적 동맹 조건 변경. 이 모든 것이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런 접근법은 필연적으로 다자협력을 붕괴시키고 세계 곳곳에서 군비경쟁을 촉발한다. 동맹국들은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굴복하거나, 독자적 군사력 확보에 나서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다자주의 약화, 국제분쟁 개입 기피, 가치외교 포기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은 전 세계 외교 전략의 근본적 재편을 강요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시대에는 승자가 없다. 미국 시민들 역시 높은 인플레이션과 사회적 양극화, 민주주의 제도의 침식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제사회는 공동 번영과 기후위기 대응, 분쟁 해결 등 인류 공통의 과제에서 멀어지고 있다.
막스 베버가 120년 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던진 경고는 오늘날 트럼프 현상을 통해 현실이 되고 있다. 그는 근대 사회가 “정신없는 전문가들과 심장 없는 향락주의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공허한 껍데기”로 전락할 위험을 경고했다. 베버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끔찍한 발전이 끝날 무렵, 완전히 새로운 예언자들이 나타날 것인가? 아니면 옛 사상과 이상들이 강력하게 부활할 것인가? 혹은 기계적 화석화만이 남게 될 것인가?” 베버가 우려했던 ‘근대의 위기’가 트럼프 시대에 ‘현대의 위기’로 부활하는 모습이다. 극우적 일방주의가 민주적 질서를 해체하고, 자본주의 정신이 방향감각을 잃은 시대. 우리는 새로운 비전도, 과거의 가치 복원도 없이 기계적 반복만을 되풀이하는 공허한 현재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의 단서는 존재한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와의 회담에서 보여준 원칙적 태도와 균형감각이 그것이다. 굴복하지 않되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외교적 지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서 큰 산을 하나 넘었다고 천진난만하게 좋아할 때인가.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산이 있는 걸 알면서도 자화자찬하는 태도가 적절한지 의문이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 민주적 제도, 국제연대의 정신이 시험대에 오른 지금, 정치인과 시민사회, 그리고 우리 모두의 비판적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트럼프식 일방주의와 반지성주의의 유혹에 적당히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국제협력과 민주적 가치를 지키는 미래 지향적 책임을 다할 것인가.
국민의힘이 추천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2명 선출안이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의 반대표로 부결됐다. 여권과 시민사회에서 인권위원에 부적합하다고 비판해 온 이들이다. 국민의힘은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이상현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의 인권위 상임위원 선출안은 재석 의원 270명 가운데 가결 99표, 부결 168표, 기권 3표로 부결됐다. 비상임위원으로 추천된 우인식 법률사무소 헤아림 대표변호사 선출안도 재석 의원 270명 중 가결 99표, 부결 166표, 기권 5표로 부결됐다.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의장석으로 다가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정당 추천권을 이렇게까지 무력화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항의했다. 유 원내수석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인권위에 좌우가 있나”라며 “타협과 대화가 없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독재”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독재 타도”를 외치고 본회의장을 떠났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후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묻지마식 의회 폭주 민주당식 협치 파괴’ 규탄대회를 열고 “일방적으로 폭주하는 민주당과 민주당 출신 의장의 일방적 운영에 강력히 반대하며 일절 협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신임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과 만나 선출안 부결에 대해 항의했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몫 인권위원 추천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는 난이 일어났다”며 “부결이 반복된다면 한국의 헌법기관, 국가기관이 모두 한쪽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개신교 반동성애 단체에서 활동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주장하며 12·3 불법계엄을 옹호한 교수모임에도 이름을 올렸다. 우 변호사는 극우 인사인 전광훈 목사를 변호한 이력이 있다. 앞서 국민의힘은 반동성애 활동을 한 지영준 변호사를 상임위원으로 추천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보류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퇴장에 유감을 표하며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인사를 국회가 인권위원으로 추천하는 것은 국회 스스로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원 출신인 서미화 민주당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에서 “인권위를 일명 ‘안창호(위원장) 사조직’ ‘윤 어게인 집합소’로 전락시키려는 국민의힘 만행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여야가 합의한 비쟁점 법안 14개가 국민의힘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전 유공자가 사망한 경우 배우자에게 생계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참전유공자 예우법 개정안, 한국산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증액하는 내용의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 등이 통과됐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국정조사 계획서도 재석 163명 중 찬성 161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국회는 이날부터 다음 달 25일까지 30일간 오송 참사의 직·간접적 원인과 책임 소재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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